"군중의 인기와 돈에 매여 복음을 듣지 못하는 세속주의"
(행 24:22-27)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세계복음화” 이것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주신 절대 은혜다. 이 비밀이 내 것이 될 때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죄의 권세가 꺾인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 “예수는 그리스도”를 가지고 반드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죄의 권세가 꺾이지 않으면 처절한 사망권세를 맞게되고, 지옥권세를 뛰어넘지 못해 영원히 저주에 갇히게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고백이 바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죄의 권세를 해결하려면 회개가 있어야 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이 벨릭스 총독과 그의 아내에게 이 메세지를 했다면 두려움보다 누림으로 갔을 것이다. 어설프게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절제에 대하여 말을 하면 권위와 권세를 가진 자들은 갈등과 두려움 속에 빠지게 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옛사람의 체질을 깨뜨려라. 그러면 죄와 사망의 법, 심판과 저주에서 해방받을 수 있다.” 바울이 만약 이렇게 메세지를 했다면 두려움과 눌림에서 벗어나 누림과 자유, 해방을 맞이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율법의 체질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벨릭스가 바울의 메세지를 듣기는 했지만, 그는 ‘어떻게 하면 돈을 좀 받을까?’ 하는 동기가 있었다. 그런데 바울도 동기가 들어있었다. 율법의 동기로 회개를 강조하고, 많은 여자를 두었던 벨릭스에게 절제를 말했다. “모든 문제 끝” 하면 되는데 ‘절제하지 않으면 심판받는다’ 하는 율법의 메세지를 했기 때문에 벨릭스도 타이밍을 놓쳤고 바울도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타이밍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타이밍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인생의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워진다. 우리교회 나오기 시작한 힙합 가수가 나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자기가 매일 학교를 다니며 폭력을 저지할 수 있는 사역의 문이 열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매주 주일은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겠다는 예배의 절대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많이 부르면 부를수록 인생의 모든 저주가 풀리고, 새로운 문들이 열린다. 앞으로 가수들 중심으로 마약 캠페인을 시작하면 많은 열매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에 전도신학원을 마치고 제1성전에서 임바울 형제 졸업 감사 찬양제가 있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연은 전도캠프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전도하지 않으면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한다. 나는 ‘전도’ 라는 이 단어 하나 때문에 과거의 교회를 버렸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했다. 전도하지 않을 교회면 문 닫아야 하고, 목사도 할 이유가 없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먹고 마시고 사는가? 전도 해야 할 일이 없으면 죽는 게 훨씬 은혜다. 전도가 없는 사람은 사람에게 어려움만 주고 힘들게 할 뿐이다. 아들이 지휘를 하다가 앵콜 곡에 아버지에게 지휘권을 넘겨 주면서 같은 노래에 완전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지휘의 힘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음악을 알고 이해하고 무엇인지 온몸에 가진 자가 지휘를 하면 노래하는 힘 자체가 합창단원에게도 완전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보면서 나 한 사람이 전도로 완전 빠져 버리면 전 성도는 깨어날 수 있다는 갱신의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언제나 전도 앞에 갱신하고, 전도캠프의 베이스를 쳐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이고 시간표, 타이밍이다.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메세지를 마음에 새겨놓는 사람이 세상을 바꿨다. 행23:11 바울이 하나님의 음성을 새겨놓았더니 그 말씀이 계속 성취되는 사건 속에 있었다는 것이 행24장 전체다. “바울아 너는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너는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그래서 바울은 2년간 벨릭스 총독에게 붙잡혀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도 전혀 조급하지 않고 오직 로마복음화를 놓고 기도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놓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 창3:15을 모르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이것을 정말 마음에 새겨놓고 전도자의 길을 가겠다고 결단하면 모든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사람이 가진 영은 사망상태다. 행4:12,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는데 다른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기때문에 하나님과 관심 없는 죽은 종교 속에 갇히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 종교가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가진 자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소유하지 않으면 영은 사망상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지금 내가 육신의 복을 위해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은 요19:30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만왕의 왕, 그리스도 하나님이시다.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보혜사 하나님의 성령을 받으라!”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이제 우리는 이웃을 살리고 만나는 모든 생명을 살리는 자가 된다. 그래서 요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구든지 죄에서 사면할 수 있는 권세를 갖게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냥 살고, 그냥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죄의 권세를 풀어주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굉장히 어려움만 주고, 집안 식구는 원수 덩어리가 되고, 이상한 동기를 가지고 사람에게 접근해서 이상한 만남의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자신에게 있는 죄의 권세가 무너져야 동기가 사라진다. 죄의 권세가 해결되지 않으면 끊임없는 동기를 가지고 사람에게 아첨하고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며 이상주의자처럼 흉내내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세속주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세속주의자들끼리 만나면 변화는 없다.
우리 몸속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죄의 권세에 장악된 상태가 되어있다. 엡2:1 창3장 사건, 죄와 허물로 죽은 영이 된 상태다. 이런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다. 나를 살리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엡2:2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다니게 된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끊임없이 나쁜 동기가 작동된다. 원죄로 인해 찾아 들어온 수많은 욕심쟁이, 욕망을 사로잡아 즉각 밟을 때 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세속주의자들이 모이는 종교집단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래서 바라바 같이 세상을 요란하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선택하고 놓아주라고 소리친다. 이런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는 그리스도”를 가진 자들을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는 절대 죽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나쁜 동기로 사람에게 접근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는 비밀을 갖지 못해, 늘 애가 타고 몸부림을 치며 살인의 광기를 가지고 온갖 거짓말로 사람을 유혹해서 부흥을 시키는데만 혈안이 되어있고, 부흥을 시켜놓은 것이 전부 자기의 것이라고 착각하다가 비참한 모습으로 쫓겨나가는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았는지, 하나님의 영을 받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께로 온 영, 창3:15 뱀 대가리를 깨뜨리고, 나쁜 동기가 찾아올 때마다 언제나 사로잡아 박살 내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뱀의 머리를 깨뜨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되고 확인되기 때문에 엄청난 누림이 시작된다.
그러나 세상의 영을 가진 자가 되면 저주와 재앙, 사단의 영이 지배하기 때문에 사람 속에 가증한 일들이 일어난다. 가증한 일이 무엇인가? 지식과 지혜가 어두워져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도무지 모르게 된다.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하며 자기 동기를 숨겨놓고 하나님한테 소리친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은 요6:29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의 권세가 풀리고 회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살후2:10~11 “살후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가 광신주의, 율법주의, 박애주의로 전락해서 돈을 끌어모아 우상숭배 하게 만들어버렸다. 고후4:4, 세상 신으로부터 미혹을 받아 혼미해지는 것이다. 혼미해지지 않는 비밀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되신 그리스도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미혹 받지 않고, 사람에 미혹 받지 않고 그리스도 그 영으로 하나님의 뜻에 집중 할 수 있는 힘이 온다. 우리 몸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비참한 영혼이 되는 것이다. 요8: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요8:44 마귀에게로부터 난 자, 마귀로부터 탄생되었기 때문에 이 죄의 권세를 없애라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진짜 우리 영혼 속에 들어와야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구원을 받게 된다.
인간은 영적 본능을 따라 하나님을 찾기는 찾지만, 사람 몸에 와 있는 죄의 권세를 깨뜨리지 않으면 종교로 끌려가는 인생이 된다. 종교는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진실하고 성실한 것처럼,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착한 이미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골2:8~9의 모습으로 사람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세계적인 철학인들의 사상을 다 섞어 사람을 속여 비참하게 끌고 간다. 그래서 온갖 언어로 사람을 사로잡아 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주의하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온 것이 아니다. 사단의 심부름을 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 대표기도 하신 안수집사님의 기도를 들으면서 강단 말씀을 기도 제목으로 놓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회개가 되었다. 그런 기도의 제목이 있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전문성을 가지고 도전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줌마로 늙지 말고 전도를 준비하여 나의 전문성으로 도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죄의 권세에 묶여 종교에 걸려든 자들은 진실해 보려고 몸부림을 치며 만원이라도 내면 진실해질 것 같은 착각에 힘들게 산다. 열심, 물질, 봉사, 헌신 이런 것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 우리 몸속에 죄의 권세가 깨지면 사람의 작은 일 하나에도 회개할 줄 알고 믿음으로 결단할 수있는 힘이 온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안되고 어렵다고만 느끼는 것이 바로 종교다. 마12:43~45 그런 자는 전보다 더 악해지고 더러워지고 추해져서 악한 귀신 일곱이 집에 들어와 개판치게 된다고 했다. 철학은 인생에 허무함을 갖게 하는 것이고, 거듭남도 없이 그럭저럭 살게 만들어 죄의 권세에 걸려 사망에 이르게 한다. 죄의 권세는 지옥권세가 붙어있고, 지옥권세 에는 함께 동행하는 마귀 권세가 들어있다. 마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이런 곳이라면 지금 빨리 빠져나오는 타이밍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죽을 때가 되면...’ 하지만, 지금 예배드리다가도 죽을 수 있는게 사람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이 땅에 직접 오시고 그분의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 죄의 권세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면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 사망의 상태에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무엇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몸에 있는 영을 바꿔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고백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고후5:17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살아있는 영, 그리스도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창3:15 하나님의 방법을 소유한 자들은 소요케하는 자, 예수쟁이가 된다. 우리를 만나면 상대가 먼저 “예수는 그리스도” 이렇게 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바울이 예루살렘의 사람들을 소요케 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보자마자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 했기 때문에 기득권을 잡은 대제사장들, 바리새인들이 싫어한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하니까 바울을 ‘전염병자’, ‘나사렛 이단의 괴수’ 라고 낙인을 찍어버렸다. 우리 몸에 “예수는 그리스도” 로 낙인을 찍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잔인무도한 벨릭스도 바울을 어떻게 손대지 못했다. 바울을 돌봐주는 2년 동안도 얼마나 잔인한 짓을 많이 했는지 요세푸스에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데모꾼을 잡아다가 사형시키고, 불태워 죽이는 이런 상황에 바울은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며 헤롯궁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잔인무도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의와 절제, 심판에 대해 말을 하니까 벨릭스에게 두려움이 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부인을 많이 데리고 살아서 그런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온갖 심판에 시달리고 복잡한 생각으로 있었다. 그래서 그 두려움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서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바울의 메세지를 들어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결단의 시간, 타이밍에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메세지를 듣고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연기한다. 시간이 있을 때 차차 하겠다고 한다. 그러다가 2년이 지나 총독이 바뀌게 된다. 결국 벨릭는 로마 황제 앞에서 사형언도를 받는다. 그런데 그 때 바울로부터 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를 얼마나 불렀던지 사형을 면하게 된다. 벨릭스의 형이 황제에게 찾아가 모든 은과 금을 주고 보석금으로 풀려나고 그의 직책이 상실되면서 그것으로 사라지게 된다. 사람들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 라고 했지만 벨릭스는 바울의 말을 듣고 싶어했다. 잔인무도한 껍데기 인생, 거짓과 살인의 춤을 추는 더러운 자, 위선자의 가면을 쓴 자, 이런 인생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중요한 타이밍이 와 있는데도 벨릭스는 놓쳐버렸다.
사도바울은 언제나 영적싸움 속에 양삼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다. 곧 그는 항상 영적 전쟁을 하는 사람이었다. 행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사도바울은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을 바꾸려고 몸부림치지 않았다. 행24:3 대제사장, 변호사들처럼 벨릭스에게 아첨하지 않았다. 그들은 악하고 잔인무한자, 엄청난 살인의 광기를 가지고 사람을 살육하는 자에게 ‘원수덩어리’ 라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벨릭스 당신을 힘입어” 산다는 이상한 말을 하는 자들이었다. 자기들의 목적 달성의 동기를 숨겨놓고 사람을 미혹하고 비겁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영,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자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고 있기에 어떤 상황에도 두려워하지 마라” 이렇게 임마누엘의 영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살려주는 영, 살려내는 영이 있어야 한다. ‘사망, 가난, 무능, 질병의 저주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산 영으로 새롭게 도전할지어다!’ 선포해라. 이렇게 살리는 영을 항상 사용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멋있는 신앙생활이 일어난다.
롬8:15 우리에게는 분명 살아있는 영이 있어야 한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창2:7이 드디어 우리 몸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생령이 되었다. 하나님의 성령충만의 권능이 우리 몸에 들어와 계신다. 우리는 이제 벧전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항상 머물러 계신다.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이제 우리는 육신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 속에 있어야 한다. 롬8:9 절대 육신에 있으면 안 된다. 그래야 죄의 권세에서 해방을 받은 자가 되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가 된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육신에 있지 않고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의 자녀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엄청난 사람이 되었는데 늘 육신의 일에 있기 때문에 찌질하고 쟁쟁거리고 쫀쫀해 있는 것이다. 어설픈 동기를 가지고 사람에게 접근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알아채는 것이다. 숨은 동기를 가지고 사람에게 접근하면 상대는 금방 눈치챈다. 숨은 동기를 가지고 있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의 동기를 가져라.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지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권세가 없기 때문에 상대가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아가 버린다. 그런 수준으로는 전도자, 리더,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될 수 없다. 사람 속에 있는 거짓 동기를 버려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거리낌 없는 멋진 그리스도인이 된다.
*구원 받지 못한 믿음을 가진 자가 벨릭스 총독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이 메세지를 듣고도 돈을 좀 받을까 하는 동기 하나 때문에 끊임없이 그리스도가 희미하게 들린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돈의 동기가 “예수는 그리스도” 이 복음을 자꾸 변질시킨다. 바울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돈을 걷어서 자기에게 가져오지는 않을까 하는 다른 생각들이 자꾸 들어오기 때문에 변질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있는 동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자꾸 이기적이고 거부하는 믿음이 오는 것이다. 나만이 알고 있는 숨은 동기 이것을 버리면 단순해지고 깨끗해지고 예뻐진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숨은 동기를 깨뜨리라는 것이다. 계12:7~9 “엣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온 천하를 꾀는 자”는 끊임없이 우리 안에 동기를 가지고 이간하게 하고 계략을 꾸민다. 창3장, 이 원죄로 인해 “예수가 그리스도” 그 이름을 거부하게 만드는 그놈을 자꾸 박살내는 그 힘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3:15을 주셨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 메세지를 들으면서도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깨뜨리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행24: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오면 자꾸 “예수는 그리스도” 고백 속에 두려움을 깨뜨리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교회는 다니는데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벨릭스는 전도자 바울을 만나고도 구원을 받지 못한 가련한 운명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노예 출신인 벨릭스는 좋은 기회들을 많이 만난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 여정에 많은 운도 따랐다. 그래서 노예 출신 치고 이스라엘에 데모가 많이 일어나는 그 골치 아픈 나라에서 총독이 될 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데모, 소요만 일어나면 사람을 가차 없이 죽이고 상대방을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한 자였다. 이 일을 반복적으로 계속하다 보니까 로마 황제에게 고발장이 계속 올라가서 결국은 새로운 총독을 부임시킨다.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운’ 이다. 그래서 가수들이 노래 하나를 히트시키고 계속 운이 올 줄 알고 더 좋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고 결국 무너지는 것이다. 벨릭스는 구원의 기회, 새 사람의 기회, 영생을 얻는 기회, 자신의 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는 기회를 다 놓쳐버렸다. 오로지 군중의 인기와 돈을 사랑하는 기회주의자로 전락해버렸고, 가면을 쓴 이상주의자가 되어버렸다.
벨릭스는 구원의 기회를 끊임없이 연기시켰다. 차차 귀신에게 잡힌 것이다. ‘내일부터 당장 새벽기도 할거야.’ 하는 말이 벌써 30년째다. 그것을 죽은 믿음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미루는 것은 무서운 불신앙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옛 틀을 깨드려야 한다. ‘사망아, 질병아, 가난아, 무능아, 너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깨질지어다!’ 우리 자신을 잘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무능한 사건에 휘말려있지 않은가? 가난에 주저앉아있지 않은가? 질병의 두려움으로 영혼이 삼켜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자꾸 다음으로 미루는 삶을 사는가? 이것을 바로 불신앙이라고 한다. 죄의 권세는 영원히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계속 살면 광신주의자로 돌변하고, 율법주의자로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너 때문에’라고 핑계를 대는 인생으로 전락한다. 예수사랑 모든 가족들은 더이상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시작이 없이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 이 일에 대해서 나는 증인이다. 나는 돌출행위도 심했고 성격 자체가 난폭하고 포악하고 순식간에 욕이 튀어나오는 변화무쌍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즉각 “예수는 그리스도” 했다. 이성주의자, 세속주의자, 기회주의자들은 자신의 숨은 동기 때문에 늘 차차 연기만 한다. 그래서 결정적 기회를 놓친다. 아주 똑똑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처세에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자신을 꾸미지만 운명적 저주를 그대로 받게 만든다. 그래서 예수님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오늘 밤 네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 말씀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즉각 실천하지 않고 인생을 사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저주다.
벨릭스는 그리스도에 관한 도를 자세히 알고 있었다. 행24: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었는지, 부활을 본 오백여 명의 사람들에 대한 소문, 유대 종교 안에 기독교가 탄생되고, 그것으로 유대교와 싸운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된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꾸 연기만 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죄의 권세를 깨뜨리지 않고 연기만 한다. 숨은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벨릭스는 오직 목적이 돈이었다. 지금, 당장, 뱀 머리를 깨뜨리는 메세지가 우리 앞에 와 있는데 연기만 하고 회개할 줄 모른다면 결국 구원을 상실하게 되고 구원의 축복을 잃어버린다. 다음으로, 차차, 연기하고 시작하겠다는 변명은 불신앙적 사고다. ‘예배에 지속하지 못하게 하고 끊임없이 예배를 방해하는 더러운 저주의 영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고 부산행으로 가지 말고 너는 일어나 서초동으로 갈지어다!’ 이렇게 명령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산 영이 되고 살리는 영이 되고 우리의 인생은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연기하는 사람은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것, 가족사, 사회 이슈 이런 것은 다 알고 있으면서 복음만 모른다. 자신이 예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안다고 바울에게 얘기도 한다. 그리고 벨릭스 부인의 요청으로 바울을 계속 불러들였다. 이스라엘 헤롯 1세 왕의 딸인 벨릭스 부인은 벨릭스 총독의 네번째 부인으로, 유대종교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바울을 계속 초대한 것이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갔고, 총독을 계속 할 줄 알았던 벨릭스는 결국 로마 황제의 부름으로 가게 된다. 회개는 연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밤에 결산을 봐야 한다 시17:3 “잠잘 때,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였나이다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고 잠에 듭니다” 내일로 넘기지 말고 오늘 맘에 결심하고 끝내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모든 문제 끝, 마귀야 가라, 성령 충만” 하고 결심을 하고 잠드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회개를 연기한 벨릭스는 결국 운명의 시간표를 맞이한다. 두려움이 왔을 때 빨리 돌이키면 되는데 ‘내가 왜 이렇게 두렵지. 왜 이렇게 머리가 어지롭고 괴롭냐, 왜 이렇게 힘빠지지...’ 하면서 다음에 하자고 연기하는 것이다. ‘아, 두렵다’ 할 때 “예수는 그리스도” ‘아, 힘들다’ 하기 전에 “예수는 그리스도” 해야 한다. 그러면 죄의 권세가 깨지면서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시인하게 된다. 정말 당장 하고 싶은데 지금은 안된다고만 말한다. 인간은 내일이라는 보증이 없다. 안개와 같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허상이라는 안개 속에 실상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은 너무나 비참한 운명이다. 안개와 같은 나의 운명이 벗겨져야, 죄의 권세가 벗겨져야 실상이 보인다. 창3:15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보는 날이 되고 아는 날이 되고, 시인하는 날이 되고, 영접하는 날이 되기를 축복한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는 우리 몸에 감화를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사단의 대가리를 깨뜨리라고 감화를 주시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라고 감화를 주시고,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감화를 주신다.
벨릭스는 2년간 바울에 대해 죄를 찾지 못하고 뇌물만 받으려고 끊임없이 기다렸다. 바울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다 괜찮은 경제인이었고, 바울 앞에 겸손한 모습을 보이니까 바울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작은 동기가 끊임없이 허상에 취하게 만들었다.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역사를 바꿀수 있는 기회,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이것을 놓쳤다. 그래서 구원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절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의 문제는 종교도 아닌 영적 세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의 일을 멸하면 너는 살게 된다. 내 입에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즉각 즉각 시인하지 못하게 내 영혼을 장악하고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나를 사로잡고 있는 저주, 죄의 권세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질지어다!’ 이렇게 고백하고 시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는 생명들이 되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군중의 인기와 돈에 매여 복음을 듣지 못하는 세속주의, 기회주의가 오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산산이 무너지게 하옵시고, 자신의 내면 속에는 죄의 권세와 지옥 권세와 사단의 권세로 장악하고 있는 참으로 악질적인 영혼으로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이상주의자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는 더러운 거짓의 가면을 오늘 벗어버릴 수 있는 날을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가에 대하여 이제는 다시 한번 우리들이 깨닫게 해주셔서 올바른 이름 여자의 후손 메시야 그리스도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죄의 권세를 다 해결해놓으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그 이름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녀 된 신분 권세를 허락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영으로 말미암아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을 정복해가고 다스리며 충만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축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구원의 축복을 받을 만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구원 받지 못한 믿음이 우리 영혼 속에 춤추지 못하도록 우리 영혼을 성령 충만으로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간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영이 죽은 상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죄의 권세에 장악된 상태, 광명한 천사로 자신을 가장한 이상주의로 변화도 없이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 종교에 갇혀 살아야 할 나에게,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이름,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운’을 의지하여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숨은 동기로 인해 말씀을 들어도 결단하지 못하고 늘 연기하는 불신앙적 사고를 깨뜨리고, ‘예배를 지속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저주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떠나가고 너는 성전으로 향할지어다’ 당장에 선포하는 행동 속에, 구원의 기회,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창세기 3장 15절을 모르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군중의 인기와 돈에 매여 복음을 듣지 못하는 세속주의에서 빠져나와, 안개와 같은 인생 앞에 하나님의 뜻과 지혜 되신 예수그리스도 이름만을 전달하는 전도캠프의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