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하는 말로 정치와 야합하는 종교적 이기주의"
(행 24:1-9)
영적인 사실을 알면 인간관계에 문제 될 일이 없다. 주일에 예배하는 이유는 세상적인 힘이 아닌,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고 한 주간 도전하고 시작하라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 위로부터 내려온 언약, 창3:15 “예수는 그리스도” 이 언약을 붙잡은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고전12:2 말 못하는 이상한 종교 집단, 거짓말쟁이들이 끄는 대로 끌려가지 말라고 하시면서 고전12:3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 비밀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할 수 없음이니라”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가 없고,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인 성령을 모르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는다.
현장에 가보면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눈동자에 초점을 맞추고 조금만 메세지 해줘도 된다. “내가 가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비밀 속에는 운명, 사주, 팔자, 사망권세, 지옥권세, 무능, 가난, 질병, 가정, 모든 저주를 해결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이렇게만 해도 듣는 사람은 이것이 엄청난 메세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정말 가지면 그리스도 그 능력을 통해 영적인 힘을 얻게 된다. 곧 세상을 리드 할 하나님의 힘, ‘되어지는 축복’ 을 갖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안된다고 한탄하며,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런가? “예수가 그리스도” 그 오직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유일성의 응답이 있고, 내 몸이 변하는 재창조가 들어있다. 이 그리스도가 몸에 각인, 체질, 뿌리 내리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 풍습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 마귀를 따라 세상 풍습에 묶이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해결할 길이 없게 된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지 못하면 ‘나’ 라는 기준 속에 갇히게 되는데, 성경은 그것을 ‘귀신들림’ 이라고 말씀한다.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는 원죄를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없애지 못하고 스스로 속는 것이다. 끊임없이 운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단의 신분이 되어 이 세상 풍습을 좇게 만드는 사단의 전략에 허우적대며 문제 속에 주저 앉아있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가 지금까지 안된 자아라면 깨뜨려야 하지 않는가? 내 인격으로 안되었다면 그 인격을 무너뜨려야 하지 않은가? 내가 가진 실력으로 뭔가 되지 않았다면 그 실력을 새롭게 해야 할 갱신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능력으로 다시 한 번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몸이 병들었다면 우리의 근본에 ‘불안’ 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품을 떠나면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오듯이, 인간도 하나님을 떠나 불안이 시작되었다. 그 불안한 마음, 두려움을 해결해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셔서 우리를 향해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힘을 얻어 시작하면 된다.
기도는 성령충만을 가져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응답’ 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듣는 것’ 이다. ‘하나님이 들으신다’ 는 그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기도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교회는 응답을 달라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발광, 발악하는 상태다. 하나님이 듣는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기도제목은 뚜렷해지고 계속 수정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 비밀이 없으면 누리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눌림의 길을 선택한다. 마12: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하나님이 우리의 소리를 듣고 “손을 내밀라” 하신다. 손을 내밀 때 모든 것을 회복 받고 인생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의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은과 금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내게 있는 것이네 안에 들어가면 너도 일어나 걷는다” 했다. “나와 함께하신 그리스도 그 분이 너의 소리를 들으셨다” 는 말이다. 나의 말을 듣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마음과 생각을 크게 열고 자신을 진단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본문에, 아첨하는 말로 정치와 야합하는 종교적 이기주의에 어떻게 빠지게 되었는지 나타난다. 나의 수준을 깨뜨리는 유일한 해답,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우리 몸에 없으면 이렇게 이기주의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로부터 내려온 언약을 주셨다. 땅의 지식을 준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 언약을 주셨다. 약속을 붙잡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엄청난 축복을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셨다. 그래서 창12:1~3 아브라함은 근원적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창3;15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조주 하나님,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에게 보내셨다. 예루살렘, 세계 살릴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친히 말씀해주셨다.
언약의 힘을 가지면 기도의 힘도 갖게 된다. 창12:7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는 분이다. 우리는 언약의 백성, 이 시대 세계복음화 주역, 디아스포라 미션을 가지고 5천 미종족을 살리고 또 후대를 살리겠다고 마음에 새겨놨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곧 마귀의 일을 멸하신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저주와 질병, 가난과 무능을 멸하신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예수는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염려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다. 그 분이 함께 하시는데 왜 불신앙으로, 이기주의로 전락하며 살려고 하는가? 우리 안에 이런 것은 뽑아버려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들으시고 창15:1 우리에게 응답하신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 두려움을 들었으니 이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방패 역할을 해주시겠다고 하신다. 이제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형통케 하시겠다고 하신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이용해서 살려고 하지 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를 가진 자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창17:1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언제나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절대 아첨하는 말을 내어버려라. 정치, 사람들과 야합하는 잔머리 버려라. 종교적 이기주의로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이 새로워지고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된다.
창17:5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축복하시는데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이름을 바꿔주셨다. 전 세계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의 뜻대로만 살아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자아중심, 세상의 실력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 인생을 멋있게 살아보라고 얼마나 이름을 멋있게 지어주셨는가? 그런데도 수 십 년을 살고도 실패하고 문제 앞에 주저앉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자아나 인격, 실력으로만 세상은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언약을 주셨다. 이웃이 주거나 부모로부터 받은 복음이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비밀을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주셨다. 그래서 이름도 바꿔주셨다. ‘세계복음화의 아버지가 되라. 디아스포라 237 나라를 살리는 주인공이 되라. 세계복음화 5천 미종족을 살리는 산업인이 되라.’ 하나님이 주신 이 비밀이 나의 것이 되기를 축복한다.
창18:1~3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성삼위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보았다. 성삼위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세를 갖추면 모든 문제는 풀려진다.
성삼위 하나님보다 더 큰 자가 이 우주와 만물에는 없다. 히6:13~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성삼위 하나님보다 더 큰 자가 이 우주와 만물에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맹세를 하셨다. 그래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진짜 큰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절대 앞서지도 않고 뒤 처지지도 않고 때를 기다린다. 응답을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은 결정적 순간에 이기주의가 나오고 아첨하는 말이 나오고 거짓말쟁이가 된다. 이 비밀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 자기 입장을 고집하는 이기주의로 전락하여 마귀의 심부름을 하는 비참한 자가 된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침묵하고 그분의 약속을 기다리기만 했는데 아브라함의 모든 소리를 들으시고, 그가 죽기 전에 모든 응답을 다 허락해주셨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언약적 축복을 받은 엄청난 사람인데 왜 아첨하는 말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잔머리를 쓰고 거짓말로 야합하고 죽은 우상에 이끌려 가는 이기주의로 전락해야 하는가? 더러운 것들을 버릴 줄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복의 근원, 창3;15을 가진 자라고 말씀하셨다. “너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미 대표적인 축복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믿고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네 씨로 말미암아 열방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우리는 기념비적인 축복을 가진 자들이다. “너를 능히 당할 자, 이길 자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불가항력적 은혜를 가진 자다.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면 그놈은 우리의 뒤꿈치를 물게 될 것이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마라.’ 강단에서 정말 셀 수 없이 선포한 메세지다. 이번에 나흘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집중하며 기도 속에만 있었다. 그런데 뒤꿈치 한 가운데 부분이 1.5cm 정도 찢어졌다.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계속 피가 났다. 정말 뱀이 콱 물은 것 같았다. 주변에 무엇엔가 찔려나 싶어 만져봐도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더 기뻤다. 늘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오고 무릎에 작은 통증이 있었는데 뒤꿈치 상처로 인해서 통증이 사라져버렸다. 피가 날 때 빨간 피가 아니라 시커먼 피가 나왔는데, 그 때 내 다리가 재창조 된 것 같다. 한마디 불평하지 않았고, 직원이 회사에 말해서 보상을 받으라고도 했지만 침묵하면서 그냥 소독하고 약만 발랐을 뿐이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그 분께 있으면 그 분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불신앙과 싸우면 된다. 흑암에서 빠져나오는 그 기도가 없으면 끊임없이 작은 일에 분노가 치밀고 견딜 수 없는 패배감을 느끼며 살게 된다. 흑암에서 빠져나오고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는 그 기도가 우리 삶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자꾸 헛맹세 속에 자신에게 스스로 시달리게 된다. 아니면 보복하고 복수하려는 살인의 광기만 치솟는다.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외식주의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라져야한다.
내 기도 소리를 들으시는 분은 살아계시고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고 내 자신을 부인하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 이 기도가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작은 사건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틀린 기도만 하고 있다. 원죄에 빠져있으면서 기도하는 것은 귀신들려 굿하는 것과 같고 귀신들려 점치는 것과 같다. 어떤 분이 나에게 “목사님, 제가 예수사랑교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백프로 교회를 다녀도 무당이 되었을 것입니다.” 했다. 자기는 다른 사람을 보면 관상이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만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마음을 열고 들여다봐도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자기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사람들에게 관상을 봐주고 점을 쳐줬는데 자기 인생은 늘 풀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다가 2년 정도를 쉬고 우리교회를 와서 메세지를 들었다고 했다. 강단에서 거울을 보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도대체 너는 누구냐?’ 이것을 여러 번 해보라고 해서 실천해봤는데, 자기는 정말 충격 받았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는 누구냐’ 하는데 진짜 자기 영혼에 그 말이 부딪치면서 자기의 실체가 나타났다고 했다. ‘너는 무당인데 왜 예수사랑교회 앉아있냐?!’ 하면서 교회를 나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떤 장로님은 스스로 “나는 장로가 아닙니다. 박수로 불러주세요” 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사람은 절대 이기주의, 사망권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고전2:12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은혜로 알게 된다. 세상의 영을 가진 것으로 살면 죽어도 인생의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봐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으면 내가 어떻게 가야 할 지, 그 길을 발견하게 되고 알게 되고 그분을 영접해서 사실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사단이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 육신의 떡을 구하는 것이다. 사단의 전략은 자신이 좋아하는 기도를 받는 것이다. 사단이 좋아하는 기도가 또 있다. 명예다. 그리고 천하를 보여주면서 천하를 달라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는 마12;28~29이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 그 이름을 힘입어 네 속에 잡스러운 것, 더러운 것을 내어 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임하게 된다.” 강한 자를 결박하면 아첨하는 말이 사라진다. 강한 자를 결박하면 야합하며 잔머리 쓰는 거짓말이 사라진다. 강한 자를 결박하면 말 못하는 종교 우상에 끌려가지 않고, 나의 옛 사람의 자아를 사로잡아 내버리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게 된다. 그래야 하나님이 함께 한다. 마12:31~32,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함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절대 사함을 받지 못한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귀신 들린 상태로 다니고 아첨하는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살면 모든 문제가 가벼워지고 불안해 할 이유가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보좌의 능력을 누리는 기도가 필요하다. 강한 자를 결박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그 보좌가 나의 보좌가 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 거룩하사 주님 나라 임하시고 뜻이 이뤄지이다” 이렇게 고백하고 기다리면 된다.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주고 가셨다.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마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보좌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고 나를 용서한 것처럼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그 용서의 긍휼이 성령으로 역사하신다면 어떤 문제든 기다리는 만큼 응답이 온다. 초등학생 아이가 “아빠, 나 오토바이 사줘!” 하면 아버지가 아들의 말을 듣고 성장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매일 싸움질하고 남의 오토바이를 훔치고 다니면 아버지가 사주겠는가?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않고 평안하고 안전해보일 때 오토바이도 사주는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도 자식을 사랑하는 긍휼이 있듯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소리를 듣고 계신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완악한 이기주의를 내어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언제나 흑암을 꺾는 기도를 하는 개인이 되고, 흑암을 꺾는 교회가 되면 모든 것이 행복해진다.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언제나 화목하며 용서하고 배려와 이해 속에 예배를 드릴 때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7:3~4 자기 속에 들보를 보라고 하신다. 마음을 크게 열고 나를 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을 진단하고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 내 안에 과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신분과 권세와 확신이 내 몸에 새겨져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지기 때문에 언제나 나를 들여다보는 진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그래서 어떻게 이뤄주실 건데요?!’ 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바보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지만, 어떻게, 어떤 방법을 통해서 이뤄주실 것이라는 음성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잔머리를 쓰는 것은 나쁜 것이다. ‘어떻게 응답하실까? 저 사람을 통해서 응답하실까?’ 이런 생각을 하지 마라. 하나님의 응답은 미스터리다. 우리가 알고 싶어도 알려주지 않는다. 내 몸에 이기주의가 빠지고, 거짓말이 사라지고, 사람의 방법을 쓰는 잔머리, 야합을 버리고, 아첨하는 말들을 버리면, 음모의 현장에서 빠져나오면 하나님께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된다.
바울은 가소로운 음모의 현장에서 정말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잔머리를 써도 사람의 잔머리는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사실은 서로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쓰지 않는 것이 훨씬 낫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잔머리를 상대가 모른다고 생각하고 말을 한다. 사업하시는 장로님들이 하는 말이, 사업하는 사람들은 서로 잔머리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목사님이 너무 존경스럽고, 그리스도 그 하나로 너무 만족한다고 했다.
음모는 자기들끼리는 통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사람은 이길 수 없다. 음모를 꾸미는 자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행23: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이 소리를 바울의 조카가 듣고 천부장에게 갔다. 음모는 자기들끼리는 통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사람은 이길 수 없다. 고소를 해도 고소인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 음모를 꾸미는 자 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모든 사건 그 위에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변해야 한다. 변화도 없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구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예수사랑교회에 있다면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확신 위에 모든 것을 용서하고 미움을 버리고 사랑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행1:8에 약속하셨다. “성령충만을 채워놓으면, 우리 영혼에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면,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면 나는 나를 땅 끝까지 데려가리라.”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약속하신 마지막 메세지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 부릴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고, 금고에 쌓아놓을 일도 없다. “볼지어다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 임마누엘 축복을 누리면 된다.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만큼 음모를 꾸미는 현장 속에서 아첨하는 말을 해야 하고 자신도 모르게 사람 사이에 거짓말하고 이간하고, 이기주의 속에 사망권세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우리 몸에 사단의 근원이 시기 질투다. 여기에 발작이 일어나면 알 수 없는 미움 속에 사람중심이 된다. 나는 큰 교회를 눈곱만큼도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큰 교회에서 요청도 여러 번 왔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이기 때문에 첫 번째도 겸손, 두 번째도 겸손, 세 번째도 겸손 밖에 없다. 무엇을 쌓아보려는 욕심도 다 내어버렸다. 시기, 질투, 열등감, 피해의식 이런 것들이 우리 몸에서 시작되면 큰 일 난다.
아첨하는 말, 인간관계로 야합하는 말, 이기주의가 내 중심에서 발동되면 정신 못 차리는 날이 찾아온다. 죄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죄의 권세가 작동되기 때문에 결국 사망을 낳게 된다. 유대 사람들, 제사장들이 하나같이 시기, 질투 하나로 바울을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바울을 ‘전염병 같은 자’,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 ‘성전을 더럽히는 자’ 라고 표현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뭔가 손해를 보는 것같이 느끼는 이기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행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내가 1995~96년도 이 복음운동을 시작하면서 훈련을 받는데, 많은 강사 요청이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가는 곳마다 소요가 일어났다. 전염병과 같이 퍼져나갔고, 이단의 괴수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사람들에게 반응이 나타났다. 그러면서 나는 수많은 목사님들의 시기 질투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이 시기, 질투로 격동하지 않도록 해줘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래서 많은 요청이 와도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떤 목사님은 나한테 차떼기 당이라는 표현도 했다. 관광버스로 원주에서도 그 교회를 간다더라 하는 별 소리를 다 들었다. 우리가 함께 세계복음화를 하는데 왜 그런 표현을 할까, 참 바리새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오히려 숨었고, 교회를 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 더 겸손한 자세로 기도 속에 있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예수사랑교회에 좋은 제자를 보내주셨다. 그래서 예수사랑교회는 참 좋은 교회다. 설치는 사람도 없다. 홍해가 갈라지기 전에 홍해를 먼저 갈라보겠다고 그리스도 하고 뛰어내렸다면 그 사람은 찾지도 못했다. 우리는 홍해가 갈라지면 그 때 가면 된다. 절대 늦지 않는다. 안전한 길로 인도하고 싶어서 나 역시도 설치지 않는 것이다. 대만전도캠프에 가서 전도하지 않아도 된다. 대만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흑암을 꺾고 전도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면 된다. ‘이 대만 땅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우상의 국가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게 하옵소서’ 그러면서 다니는 식당에 가서 전도지라도 주면 그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인도에 썬다싱이라는 전도자는 인생의 길을 찾지 못해 열차에 자기 몸을 던지려고 철길을 가다가 자기 가슴에 날아 온 종이 한 장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이 분이 도대체 누구냐, 이분을 내가 찾아야겠다하고 철길에서 자기 몸을 일으켜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그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 속에 히말라야 산맥을 열 번이나 넘나들며 전도를 했다. ‘히말라야 눈꽃’ 이라는 그 책자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도 이런 전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했다. 영원한 무저갱의 저주에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바꿔주신 이 은혜를 우리가 무엇으로 갚을 수 있는가. 아첨하는 말보다 복음의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 사람과 관계 속에 끊임없이 야합하려고 이간하고 거짓말, 시기, 질투하는 것보다 “예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한 번 더 불러준다면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겠는가. 종교적 열심, 이기주의로 사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한 영혼이라도, 내가 가는 그 지역이라도 재앙이 들이닥치지 않기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더 기뻐하시겠는가. 이태원에 다섯 평 밖에 되지 않는 그 지역에서 154명이 질식해서 죽었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안되었다. 언덕길에서 사람이 내려오고 지하철역에서 올라가고 양쪽에서 사람을 누르는 상황에 흑암 덩어리들이 같이 모이니까 질식해서 죽은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흑암의 영향을 받아서 서로 밀착되어 숨을 쉬지 못하도록 흑암이 짓눌러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밀착되면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들이 끌려간다. 흑암이 역사하면 그 누가 대책을 세울 수도 없고, 똑똑하고 잘났다고 하는 국가도 손을 댈 수 없다. 대통령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한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실 것이다. 이태원에 미션홈이 있음에도 흑암권세로 인해 수많은 영혼이 죽었다는 것에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을 다녀야 한다. 그래서 캠프도 하는 것이다. 전 세계 나라를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누리면서 흑암이 무너지도록 전도캠프를 진행해야 한다. 눌리지 말고 누리는 빛의 자녀가 되기를 축복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전문성도 찾아내고, 세계의 경제 플랫폼을 어떻게 짤 것인가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사렛 이단의 괴수 예수는 그리스도’ 이런 소리를 들어도 우리는 괜찮다.
국가의 지도자, 대제사장 아나니아에게 창3:15절의 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은 하나도 없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 장로들,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한 짓이 무엇인가? 로마 언어를 사용하는 변호사를 돈 주고 데려와서 대리자로 시켜놓고 말을 전달하게 했다. 그들 영혼 속에는 이미 하나님이 없었다. 종교는 사람을 움직여 이렇게 장사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없었다. 그들은 위로부터 온 하나님의 언약을 가슴에 새기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아첨하는 말, 사람을 움직이는 야합하는 거짓말 밖에 없었다. 행24: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하는 말이나 오늘날 대한민국이나 다를 것이 없다.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죽음을 당했는데 목사들이 정치와 야합하여 아부를 떨고 있다. 종교는 이렇게 더러운 거짓말로 야합하는 것이다. 우리는 거짓말하는 종교인들의 말을 듣지 말고, 위로부터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언약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호4:6 사람들이 왜 망하는지에 대해 말씀했다. “내 백성이 창3:15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 네가 창3;15 여자의 후손 메시아 그리스도를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린다. 여자의 후손의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네가 네 하나님의 복음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잃어버리리라”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에 재앙이 왔다면 모든 목사님들은 무릎 꿇고 회개해야 한다. 우리 예수사랑교회 만이라도 벧전2:9 왕 같은 제사장의 축복이 우리의 것임을 알고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선포하는 리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나니아 제사장과 장로들은 전도자 바울 한 사람을 죽이는 생각 뿐이었다. 오늘날도 똑같은 일은 일어나고 있다. 예수사랑교회 메세지가 온라인상으로 퍼져 나가니까 여러모로 교회에 핍박이 오기 시작한다. 얼마 전에도 나에게 쉽게 살아갈 수있는 방법을 제시했지만 단숨에 거절했다. 만약 내가 땡큐하고 허락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기득권 세력들이 여러모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쓰고 있다. 우리는 이럴수록 깨어 기도하는 승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유대인과 로마인은 원수지간인데 아나니아 제사장이 벨릭스 총독에게 당신으로 인해 태평을 누린다는 아첨을 한다. 아첨 속에는 깊고 무서운 악이 들어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깊은 악이 바로 ‘자기 중심’ 이다. 그래서 이기적인 생각에 묶여 가장 잔인한 벨릭스 총독에게도 아첨을 한다. 사람이 인사불성이 되어 타락하고 변질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망각하며 살면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가야바 대제사장도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고발하여 죽게 했다.
*우리가 가진 복음,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것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들은 바울이 왜 소요를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덮어씌워 죽이려고 하는가? 바울이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일반교회는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이 유일성이 없다. 그래서 사람에게 변화가 없고 재창조가 없다. 늘 이기주의의 옛 사람을 지닌 채로 신앙생활을 한다. 그래서 교회는 점점 타락하고 점점 무서운 강도의 소굴로 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절대로 속지 말고 언제나 자유와 해방과 평안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믿는 자들이 일어나니까 그들이 못 마땅한 것이다. 자기들에게 피해가 생기기 때문에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고, 바울을 죽이고 싶은 마음 밖에는 없었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 비밀을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을 믿을 때 새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게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 를 믿을 때 희망적이고 소망적인 사람이 된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없으면 알수 없는 정신질환으로 시달리게 되고 우리 몸은 점점 늙어가고 소망이 없고 희망이 없는 몸뚱이로 전락할 뿐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할 때 영혼은 놀랍게도 희망적이고 소망적이고 새 생명적인 것으로 바뀐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이 비밀을 놓치고 산다. 내게 손해가 오고 교회에 손해가 오면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다 버려버리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다. 진리를 잃어버리고 오직 이익과 손해만 생각하고 늘 계산만 한다. 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이 변호사를 돈 주고 사서 하는 일이 아첨하는 일, 거짓말과 야합, 이기주의 사상뿐이었다.
그런데 변호사도, 장로도, 제사장 아나니아가 모르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몰랐다. 민족이 살고 죽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하는 민족의 지도자 제사장이 지금 모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몰랐다. 이것을 알아야 멋있어진다. 사람의 일로만 생각하고 살면 재앙이 따라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알아야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르고 교회가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대항하고 하나님께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행5:42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 외에는 없다. 우리는 이것을 가져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마귀의 일을 멸해라. 네 몸에 와 있는 저주와 사망권세를 깨뜨려라. 모든 문제 해결되었음을 선포해라.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권세가 너에게 주어졌음을 확신해라. 아첨하는 말을 하지 말고 복음의 능력을 사용해라. 사람과 관계 속에 시기 질투 이간하지 말고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서라. 자아중심, 너의 실력, 네가 가진 지혜로 사람관계를 이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너의 기도를 들으신다.”
우리가 가진 “예수는 그리스도” 이 복음은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롬1:16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자가 되지 마라. 이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그리스도인을 나사렛당, 이단의 괴수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계신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재판하는 자 위에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그 현장을 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모르고 착각 속에 살아서 실패하게 된 것이다. 나사렛당이라는 말은 행10:38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해방케 하시려고 하나님이 기름 붓게 하신 예수그리스도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이 진리를 가지고 흑암 전쟁 속에 빛의 능력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에 있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한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아첨하는 말로 정치와 야합하는 종교적 이기주의 사상들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로잡아 결박하여 내어 버릴 수 있는 교회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영안을 열어 주옵소서. 고소인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 주옵소서. 음모론자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모든 사건 사건들 위에 하나님이 심판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영안을 열어 주시고 성령 충만을 허락해 주옵소서. 어떤 소리를 들어도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임마누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그 축복을 누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간 기도문
살아계신 하나님, 원죄에 묶여 세상의 영으로 살면서 자신의 문제 하나도 해결할 수 없게 하는 사탄의 전략에 허우적대며 하나님을 떠나 불안 속에 질병에 시달리며 살아야 할 나에게, 성삼위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언약의 힘을 가져, 이제는 세계복음화, 237 디아스포라의 주인공으로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언제나 강단 말씀을 통해 내 자신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비밀, 보좌의 능력을 누리는 기도의 비밀을 통해 하나님을 망각하여 나 중심으로 사는 깊은 악, 아첨하는 말과 정치와 야합하는 종교적 이기주의를 버리고 내 안의 더러운 것을 버릴 줄 아는 믿음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나의 소리를 듣고 계시며, 한 시대 기념비적이고 대표적이며 불가항력적 축복을 주셨기에, 이제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미움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로 변화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